겨울철 실내에서 아마릴리스 키우기- 나에겐 너무 예쁜 너

2019. 1. 25. 03:05정원일기


겨울철 실내에서 아마릴리스 키우기- 나에겐 너무 예쁜 너


농한기이다보니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인터넷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미국 뉴스나 한국 뉴스나 읽을수록 가슴속이 답답해져 온다. 희망을 말하기엔 너무 힘든 세상인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누구라도 감사한 것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줬으면 좋겠고(종교는 없습니다만..), 한편으론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나이들어가야 할지, 아이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키워야 할지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한국보다는 봄이 뒤늦게 찾아오는 이곳이지만, 이제 두 달이면 여기저기 꽃이 피기 시작할 거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올해는 그 봄과 함께 희망적인 뉴스들도 들려올까 싶어 더욱 더 기대가 되는 것 같다. 


11월부터 시작된 지리한 겨울 일상에 예상치 못한 활기를 주었던 아마릴리스 관찰 일기를 써보려 한다. 그냥 예뻤다.. 라고 넘어가기엔 내가 받은 기쁨이 너무나 컸다 .

 


12월 17일

친구 루비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마릴리스 구근을 가져다주었다. 

작은 텃밭을 알차게 가꾸는 루비, 나도 작년부터 가드닝을 시작한 후로 공통의 관심사가 늘어나 서로를 더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네가 좋아할거라고, 바로 열어보라고 한 작은 박스를 열어보니 구근이 하나 들어있었다. 

살아있는 것 맞아? 싶게 덩그란 구근이다. 과연 내가 이 아일 꽃피울 수 있을까.. 일단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작고 창백하기까지한 싹이라도 없었더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 부담감이었을 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함께 들어있는 흙?에 심는 법이 잘 나와있다.

Coir fiber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니 코코넛 fiber인가보다. 멀리서도 왔구나.. 반가워~




따뜻한 물에 Coir fiber를 넣고 불린 후 



아마릴리스 구근을 살포시 올려주었다.

구근 안으로 물이 들어가면 썩기 때문에 이렇게 땅보다 높게 심어주어야 하고, 물을 줄때도 구근 속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주변에 뿌려주어야 한다. 




이곳에선 마켓에 가면 겨울에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구근을 흔히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엔 아마릴리스와 페이퍼화이트라고 하는 수선화의 한 종류를 많이 팔고, 연초엔 히아신스를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마릴리스를 선물했는데 얼마전부터 꽃이 피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페이퍼화이트는 향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내년 겨울에는 몇 개 데려다가 키워볼 셈이다.




1월 8일

심은지 거의 20일만에 꽃대가 올라온 것이 보인다. 

설명서에는 22도 이상의 실내에 직사광선을 피해서 놓으라고 되어 있있다. 

이곳 난방은 온풍 히터라 너무 건조해서 실내 온도를 20도 이상으로 올리는 법이 거의 없고, 심지어 밤에는 15도 정도로 맞추고 자는 데도 다행히 꽃대는 잘 올라왔다. 



어느 날 보니 싹(?)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범인을 추적하니 둘째 아이가 만져보다가 부러뜨렸다고 순순히 실토를 한다. 

'이녀석아!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내가 애지중지 하는 것도 알고, 잘못한 걸 알았으니 얘기도 못했겠지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싹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인 것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부러진 싹은 살아나지 못할 줄 알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 화분 한켠에 지금도 올려져 있다.



1월 12일

꽃대가 조금 더 길어지고, 꽃봉오리도 조금 더 커졌다.



잎은 또 얼마나 조신한지.. 방사형도 아니고 마주나기도 아니고 이렇게 한쪽으로 가지런히 모여서 나고 있다.




1월 23일

꽃봉오리가 살짝 열리기 시작한다 .



1월 26일

새빨간 꽃잎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한 개가 아니라 꽃봉오리 여러 개가 함께 들어있다.



50센티 정도로 쭉 길어진 꽃대가 고고하다. 

저 작은 화분에서 이렇게 긴 줄기가 버텨주는 것이 정말 신비롭다. 뿌리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뿌리를 내리고 잎과 꽃을 피워내느라 단단했던 구근은 이제 좀 버석해보인다.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니 안이 생각보다 많이 비어있는 듯 하다. 자식을 키워내느라 텅텅비어버린 부모의 마음 속이 떠올라 울컥한다.




1월 28일

네 개의 꽃봉오리 중 하나가 드디어 꽃을 피웠다. 

꽃이 좀 오래갈까 싶어 수술을 따주었다. 이론적으로 꽃은 동물을 꾀어 암술머리에 꽃가루를 묻혀 수정을 하고 번식을 하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꽃은 존재의 의미를 잃고 시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묻기 전에 꽃밥을 제거하곤 한다. 어차피 아마릴리스는 구근으로 번식하니 꽃밥 좀 따주어도 괜찮지 않나.. 자연을 거스르는 것 같은 내 행동에 자책을 줄이기 위한 변명을 찾아본다.



남은 세 송이의 꽃봉오리가 점점 커지며 피어나는 중이다.

180도 맞은 편에 있는 꽃봉오리가 다음 차례로 피어나 균형을 맞출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1월 31일

첫 꽃의 바로 옆 꽃들이 먼저 피었다. 반대편 꽃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길다라기만 한 밋밋한 줄기, 아직 가지런하기만 한 잎들이 아이 얼굴만큼 큰 거대한 꽃을 더울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색은 얼마나 고운지.. 

자연이 주는 색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선명함이다. 내가 바로 자연이라며 세상을 비웃는 것 같다. 





2월 2일 

드디어 네 송이의 꽃이 모두 활짝 피었다. 

끝이 조금 모나있던 꽃잎은 끝부분이 말려 좀 더 둥글고 매끄러운 모양으로 변했다. 화려하다. 우아하다..




커다란 네 송이 꽃이 조화롭게 공평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꽃받침은 아닌 것 같은데 꽃잎을 싸고 있던 두 조각의 잎과 얇은 잎이 돌돌 말려있는 것 같은 흰 기관이 보인다. 




꽃은 이대로 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로 한동안 활짝 피어있어 주었다. 먼저 핀 꽃이 조금씩 시들면 보기 좋은 쪽으로 살짝 돌려놓기도 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무한한 감동을 주는 시간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싫어서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다 겨우 눈곱을 떼고 내려오면 이녀석이 이렇게 햇살속에 딱 나를 기다리고 있어 주어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너무 행복했다.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이런 감동을 선물해준 친구가 있음에 감사했다. 




2월 8일

조금 시들어 보인다. 물을 좀 더 주어야 하나 하고 보니 흙은 아직 촉촉하다. 조금 피곤해 보여도 그래도 여전히 예쁘다. 


잎은 조금 더 길어지고 볕을 조금 더 쪼이려는 듯 더 벌어졌다. 




2월 15일

꽃은 거의 다 졌다. 꽃잎을 떨구지 않고 줄기에 붙은 채로 시들어 간다. 지는 모습마저 고고하다. 수분을 잃고 투명해진 꽃잎. 아직도 사랑스럽다. 가장 화려했던 모습이 아직 내 마음속에 있으니 너는 여전히 아름답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느 새 잎이 줄기만큼 길어졌다. 저 작은 화분에 든 양분이라곤 별로 없을 섬유질의 흙과, 일주일에 한 번 조금씩 부어준 물과, 오전에 잠깐 드는 햇볕으로 이렇게 자라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이 경이롭다. 

꽃에게 너는 어떻게 그러느냐고 물으면 네가 죽은 것 같다고 했던 구근이었을 때부터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담고 있었노라고 웃으며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차라리 마법이라고 하는 편이 더 믿기 쉬울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마지막 꽃마저 고개를 숙이면 꽃대는 잘라주고 잎이 더 많은 빛을 보고 양분을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할 거다. 그래야 더 건강한 구근이 되어 번식을 하고 또 꽃을 피울테니..

하지만 선뜻 저 고고한 꽃대를 잘라줄 자신이 아직은 없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마당 한켠 큰 화분에 옮겨 심어 봄 여름 가을을 날 것이다. 

다음 겨울의 화려한 만남을 기약하면서..
 

아마릴리스 키우기, 관리법

https://homisgarden.tistory.com/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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